가고싶은 섬 낭도

조선시대 목장이 설치된 섬 낭도

낭도는 조선시대에 목장이 설치된 섬이었다. 1701년(숙종 27) ‘군수(軍需)를 보충할 수 있는 땅을 혁파한 후 재정이 궁핍해졌으니 선처해 달라’는 내용의 문서와 1757년(영조 33)부터 1765년(영조41)까지 펴낸 295개의 읍지 중 『여지도서』를 통해 볼 때 지리와 역사의 현장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1871년 10월 발행한『곡화목개지급사례』에 의하면 낭도에도 목장을 설치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낭도 목장은 규모가 20리로 말9필과 곡조는 3,000뭇이다.

낭도의 행정구역은 1896년 돌산군 옥정면에 속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옥정면과 화개면을 합하여 화정면 낭도리로 개편되었다. 1952년 낭도 내에는 여산리와 규포리 행정리가 되었다. 1968년에는 낭도출장소가 개설되었다. 구전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강릉유씨가 처음 입도하여 정착하였다한다.

낭도는 2015년 전라남도 ‘가고싶은 섬’에 선정되어 ‘여수 낭만’ 낭도는 낭도막걸리 페스티벌을 개최하였다. 폐교를 활용해 게스트하우스와 장사금 해변의 작은 도서관을 건설할 계획이다. 규포마을에서는 어가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섬 일주 산책로 18㎞에 코스를 개발하여 섬 도보여행의 1번지로 꾸밀 계획이다.

조선시대 낭도 사람의 표류기

조선시대 낭도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은 정암회(鄭唵回)가 일본에 표류한 후 표류민으로 정당한 대접을 받으며 돌아온 과정을 통해서 유추할 수 있다.
전라도 순천부 소라포면 낭도에 사는 정암회와 8명은 1791년 9월 29일 고기를 팔기 위해 돈 300냥과 쌀 10석, 유지 30동을 함께 싣고 강원도 평해를 향해 출발했다.
10월4일 울산부 항도에 도착해 쌀4석을 팔아 80냥을 벌었으나 9일 점심 때에 장기현 포을천 앞에서 풍랑을 만나 표류하게 되었다. 13일 새벽 어느 곳에 표착했으며, 그 곳 사람들의 도움으로 겨우 목숨을 구했다.

그곳은 일본의 시마네현 이즈모슈(出雲州) 간도군(神門郡)고바다이었다. 11월 15일 다시 나가사키(長崎)로 갔다가 다음 해 4월 5일 대마도를 통해 부산의 동래로 돌아왔다.

모래로 쌓은 섬 같은 사도

바다 한가운데 모래로 쌓은 섬 같다 하여 모래 사(沙)와 호수 호(湖)를 써서 사호도로 불렸다. 1896년 돌산군 설립 당시에는 옥정면 낭도리 사도였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옥정면과 화개면을 합하여 화정면 사도리가 되었다.

사도마을의 유래는 임진왜란 당시 성주배씨가 정착지를 찾아다니면서 이곳에 입도하였다.

이후 인동장씨(仁同張氏), 전주이씨(全州李氏), 김녕김씨(金寧金氏), 함안조씨(咸安趙氏) 등이 차례로 입도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 1950년대에는 500여명의 주민들이 살았고, 초등학생 수만 90여명에 달했다.

주업은 어업이었으며 칠산 바다에까지 진출하여 조기잡이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1959년 남해안을 강타한 사라호 태풍으로 인해 주민들의 배가 모두 파손되었고, 섬의 환경은 황폐해졌다. 생계가 어려워진 주민들은 섬을 떠나게 되었다. 2003년에 공룡과 익룡의 발자국이 천연기념물 제 434호로 지정되고, 2007년 사도와 추도의 돌담이 등록문화재 제 367호로 지정되면서 관광지로 변모하였다.

2012년 여수세계엑스포와 방송을 통해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하였다.

사도 마을

사도 마을은 임진왜란 당시 성주배씨가 정착지를 찾아다니면서 이곳에 입도하였다. 그 후 인동장씨(仁同張氏), 전주이씨(全州李氏), 김녕김씨(金寧金氏), 함안조씨(咸安趙氏) 등이 차례로 입도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 입향 시조인 성주배씨(星州裵氏) 묘가 현재 시루섬에 있다.

하지만 사도에는 성주배씨(星州裵氏)의 후손은 한 가구도 살고 있지 않는다. 주민들은 대부분 숙박업, 식당 등 관광업에 종사하고 있다.

추도 마을

추도는 1896년 돌산군 설립 당시에는 옥정면 추도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옥정면과 화양면을 합하여 화정면으로 개칭되면서 사도리의 1개 자연마을로 편입되었다.

낭도리(狼島里)에 속하는 마을이다. 추도마을은 언제부터 섬에 사람이 살았는지는 확실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약 1800년대에 전주 이씨와 함안 조씨가 입도하여 살았다고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사도마을에서 약1km쯤 떨어진 개이도라는 곳에 있는 작은 섬마을로 주민들이 취나물이 많이 자라는 섬이라고 하여 '추도'라고 불렀다고 한다. 난중일기에 적정을 살피기에 유리한 섬이라 하여 '개이도'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기는 하나 언제부터 사람들이 들어가 살았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2001년 전남대학교 한국공룡연구소팀에 의해 약 85m에 이르는 43개의 공룡 보행렬이 보고됨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여수 사도 · 추도마을 옛 담장

여수시 화정면 낭도리 180번지 및 117번지에 큰 돌과 작은 돌을 맞물려 쌓아 만들어 주변 풍경과 아주 잘 어우러지는 옛 돌담길이 있다. 약 850m의 돌담길은 2007년 등록문화재 제367호로 지정되었다.
사도마을의 돌담은 '강담'이라는 형식의 돌로만 쌓은 돌담 구조로 돌의 형태나 크기가 일정하지 않고, 평평한 돌에서부터 둥근돌까지 이루어져 있다.
크기도 길이 10㎝부터 50㎝정도까지 다양한 돌들을 이용하였다.

추도마을의 담장은 사도와 마찬가지로 ‘강담’구조로서 돌의 크기와 형태는 일정치 않으나, 이 지역은 사도와 달리 평평한 돌로 쌓았으며, 쌓은 방식도 고대시대의 성곽과 비슷한 형태이다. 이 지역 돌담은 섬의 앞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하여 높이가 사도보다 높으며 막쌓기 방식이다.

특히 집약적으로 형성된 돌담은 주변의 풍광과 잘 어우러져 인상적인 섬 마을풍경을 보여 준다. 이러한 돌담이 도서지방의 생활사와 건축사에 학술적 가치가 인정되어 등록문화재로 지정 되었다.